주가조작 막겠다던 ‘자본시장법 개정안’ 폐기 수순, 증권 범죄 근절 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해

pabii research
'SG증권發 주가 폭락 사태' 이후 유사한 주가조작 사건 연달아 발생
다수의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됐지만 국회 회기내 처리 어려울 듯
증권시장 불공정거래 재범률 20%,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 이어져
주가조작_20240402

지난 1일 검찰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의 핵심인물인 라덕연 전 대표를 허위세금계산서 발급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현재 라 전 대표는 시세조종을 통해 수천억원대 부당 이익을 올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SG 사태는 부당이익의 규모만 7,000억원이 넘고 현재까지 기소된 인원도 56명에 달하는 대규모 금융 범죄다. 해당 사태는 증권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지만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조치 대상자의 거래 제한 조치 등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최근 주가조작 사건들, 미등록 투자자문사 동원해 자금 끌어모아

SG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여가 지났다. 주가폭락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4월 24일 당시 8개 상장기업이 뜬금없이 하한가를 치기 시작했고 불과 사흘 전만 해도 50만원에 육박했던 삼천리의 주가는 10만원 초반까지 하락했다. 다른 종목들도 크게는 80%, 적게는 40%까지 하락했다. 해당 기업들은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로 그다지 매력적인 투자 종목이 아니었음에도 2020년부터 별다른 호재없이 주가가 급상승했다.

수사 결과 배후로 지목된 투자자문업체 ‘호안’과 라 전 대표는 2019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투자자들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을 가지고 상장기업 8개 종목의 시세를 조종해 7,305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주가조작 범행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SG 사태 이후에도 같은 해 6월 ‘5종목 동시 하한가 사태’에 이어 10월에는 ‘영풍제지 주가 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5종목 동시 하한가 사태는 동일산업, 만호제강, 대한방직, 방림, 동일금속 등 5개 종목이 한날 동시에 급락한 사건으로 대주주의 지분이 많아 거래량이 적은 종목을 공략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점에서 SG 사태과 유사한 형식을 보였다.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1년간 총 330여 개 증권계좌를 이용해 가장·통정매매, 고가매수 주문 등 시세조종을 통해 영풍제지의 주가를 올려 총 6,616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당시 혐의계좌의 상당수는 키움증권 미수계좌인 것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세 사건 모두 장기간에 걸쳐 작업을 하고 시세조종을 한다는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특히 유사투자자문, 미등록 투자자문 등과 연관이 깊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수법은 작전주가 계속 급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폰지사기과 같은 원리다. 실제 일당들은 주가가 조만간 상한가로 갈 것이라며 투자자를 현혹한 뒤 확보한 자금을 동원해 작전주를 상한가로 만들었다. 급등하는 투자 수익 앞에 밸류에이션 등 투자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주식 투자 시장에서 마치 인플루언서처럼 활동했고 수많은 유사투자자문사와 불법 주식 리딩방 등이 이들의 명성을 활용해 투자자를 유혹, 거액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실제 SG 사태의 핵심인물인 라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유사투자자문사를 운영하다가 한 차례 직원 말소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5종목 동시 하한가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주식카페 운영자 강모씨도 특정 종목에 대한 분석을 지속적으로 게시하며 투자 권유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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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범죄자 거래제한 조치 포함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

지난 1년간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회에서는 시세조종 등 증권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불공정거래 행위 제재 내역 공개, 거래제한 조치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아직 소관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더욱이 현재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정쟁이 심화된 상황인 만큼 제21대 국회의 회기 종료와 함께 해당 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시세조종 등 주가 조작시 최대 10년간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제한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주권상장법인의 임원 자격도 상실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소관위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인 데다 강 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해 사실상 법안 통과를 이끌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5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소관위 심사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해당 법안은 시세조종, 부정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3대 불공정거래 행위자의 자본시장 거래 제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출한 개정안에 따르면 주가조작범의 경우 최대 10년간 자본시장 내 모든 금융투자상품의 신규거래와 계좌 개설이 제한하도록 했는데 이같은 거래제한 조치는 이미 영국 등 해외 주요국이 도입해 시행 중이다.

AI까지 동원한 ‘웰스파고 사건’ 등, 불법 리딩방 지능적으로 진화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여전히 새로운 불법 리딩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활개를 치고 있다. 유사투자자문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 조언을 하는 업체로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리딩방으로 불리는 불법 업체들은 신고 없이 불법 영업을 일삼고 있다. 리딩방은 가입비를 내고 회원이 된 투자자들에게 메신저 등을 통해 특정 종목과 매도·매수 시점을 추천해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내 증시가 폭등하는 과정에서 리딩방이 급증했고 최근에는 총선을 앞두고 각종 테마주와 코인 열풍까지 불면서 유명인 사칭 등의 수법을 동원한 불법 리딩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욱이 근래 들어서는 일당들이 AI를 활용하면서 수법이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작업에 앞서 수개월 전부터 인터넷 곳곳에 허위정보를 퍼트려두고는 웹상의 정보를 단순히 요약 정리해 주는 AI 검색 결과를 내세워 투자자를 현혹하는 방식이다. 최근 적발된 ‘웰스파고 리딩방’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당은 올해 초부터 네이버, 레딧, 미디움 등 국내외 플랫폼에 ‘웰스파고 CEO 김태철’에 대한 허위 정보를 게시했다. 가상의 기자 명의로 운영되는 블로그도 여럿 활용했다. 이같은 사전 작업 덕에 실제 챗GPT에 ‘웰스파고 김태철’에 대해 물으면 “김태철은 웰스파고의 CEO로 한국으로 아시아 본사 이전을 결정한 인물”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이외에도 ‘주식농부’로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를 사칭한 리딩방도 있다. 이들은 박영옥 대표가 BAB투자증권일는 투자자문업체를 설립했다며 가짜 기사 이미지를 사용했다.

증권시장 불공정거래에 과징금 도입, 처벌 실효성 확보 고민해야

문제는 이들의 범죄행위가 갈수록 지능적·조직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에도 현행 법·제도는 처벌 수위가 현저히 낮아 금융시장 내 불공정거래가 근절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범 방지를 위한 불공정거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의결된 불공정거래 사건은 총 274건으로 ▲미공개정보이용 43.4% ▲부정거래 29.6% ▲시세조종 23.4% ▲시장질서교란 3.6%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과징금 등 행정조치 없이 고발·통보만 한 경우가 93.6%에 이른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고발·통보된 사건 중 불기소된 비율도 55.8%에 달한다. 미약한 처벌을 방증하는 최근 3년간 불공정거래 재범률은 20%를 넘어섰다.

증권 시장의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기로 얻은 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고 행정적 조치와 형사적 처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경각심과 예방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현재 입법을 추진 중인 거래제한 조치는 자본시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소득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불공정거래의 재범 유인을 저하시키고 이들의 자본시장 접근 자체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각에서는 거래제한이 일회성이 아닌 장기에 걸친 영구적 제재라는 점에서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 행사를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현재 발의된 법안과 제도적 장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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