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내린다’던 통신비 ‘그대로’, 논란 속 단통법 결국 ‘폐지 수순’ 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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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자율경쟁 강화 나선 정부, 단통법 폐지 '공식화'
소비자와 통신사 사이 벌어진 '간극', 단통법 폐지가 메꿀 수 있을까
"폐지보단 '개정'해야, 장점 유지하고 단점 고치면 돼"
단통법폐지

정부가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 폐지를 공식화하고 나섰다. 통신사와 유통점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을 도모함으로써 단말기 가격을 낮추겠단 취지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통신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단 의지를 내보인 것이니만큼 세부 개선 논의가 올해 통신 시장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정부, ‘단통법 폐지’ 띄웠다

정부는 22일 서울시 홍릉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개최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다섯 번째-생활규제 개혁’ 토론회에서 단통법 전면 폐지 기본방향을 공개했다. 정부는 지난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단통법이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을 위축해 국민들이 단말기를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5G 중간요금제, 3만원대 5G 요금제 등을 출시하며 통신비 인하를 유도했으나 단말 가격에 대해선 대책이 미흡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단통법의 요지는 △스마트폰 제품별로 모든 이용자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통신사가 공시한 같은 가격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판매하는 이용자 차별 금지 △지원금을 받지 않는 이용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25% 선택약정 할인을 제공할 것 등이다. 정부는 국회와 논의를 거쳐 단통법 폐지를 구체화하면서도 선택약정 할인 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요금할인을 받는 소비자 혜택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이용자 지원금 차별 방지 장치의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이 규정한 ‘이용자차별금지(50조)’ 조항을 활용해 안전장치를 모색하기로 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10년 전 도입한 규제가 기득권만 배불리는 현실을 고쳐야 한다”면서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단통법을 폐지해 지원금 공시와 추가지원금 상한을 없앰으로써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국민들의 휴대폰 구매 비용을 줄여 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호갱 막는다던 단통법, 오히려 전국민 ‘호갱’ 만들었다”

10년 전 단통법이 시행된 배경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단말기 비용이었다. 당시 기기 가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환경에서 판매점마다 보조금을 책정하는 기준이 달랐고, 이로 인해 가격 차이에 따른 지출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 전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단통법은 이 같은 소비자와 판매점 간 정보 비대칭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후에도 통신사의 ‘잇속 챙기기’는 여전했다. 들쭉날쭉했던 보조금과 판매 가격 문제는 완화됐지만 지원 금액의 한도가 생기면서 통신사들 간 경쟁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결국 고무줄 같던 단말기 비용은 ‘비싼’ 금액으로 고정됐다. 뒤틀린 평등이 시작이었다. 이후 서민들의 앓는 소리에 못 이긴 정부와 정치권이 통신사에 가계통신비 완화 대책을 주문했지만, 돌아오는 건 한시적 데이터 적선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오남석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정책국장은 “시간이 지나 이동통신사 수익이 남으면 틀림없이 요금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단통법 도입에 따라 통신 3사가 잇속을 챙기고 나면 남은 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것이란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단통법 취지인 가계통신비 인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고 통신 요금 인하를 통신사들의 자율에 맡기니 돌아온 건 △불안정한 5G 팔이 △망사용료 앞세워 트위치 등 해외 사업자 몰아내기 등 뿐이었다. 단통법이 만들어 낸 소비자와 통신사 사이의 ‘간극’은 소비자 불만을 고조시켰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호갱(호구+고객) 막으려 탄생한 법이 거꾸로 국민을 ‘호갱’으로 만든 꼴”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쏟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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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대통령실

단통법 폐지 여론 ‘확산’, 일각선 ‘개정’ 의견도

단통법 폐지에 대한 국민 여론은 이미 한데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단통법 폐지 이전이라도 사업자 간 마케팅 경쟁 활성화의 토대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의 입장이 단호한 건 단통법이 폐지돼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1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통 플랫폼 등을 통해 손쉽게 가격을 비교하고 공유할 수 있다. 정보 접근성이 눈에 띄게 늘었단 의미다. 휴대폰 가격 억제 요인 자체가 줄기도 했다. 2021년 LG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과 애플이 과점하고 있다. 과점 체제에서 기업이 가격을 내리길 기대하기란 어려운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통신사들의 보조금 인상 경쟁을 유도하고 국민의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단통법 폐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3년간 통신 3사가 영업이익 12조원 이상을 쌓을 동안 국민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단 점도 여론에 불을 지폈다.

다만 일각에선 단통법을 당장 ‘폐지’하기보단 어느 정도 개선 사안을 확인한 뒤 ‘개정’하는 방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단통법은 소비자 보호법의 성격이 강한 데다, 애초 단말기 지원금 경쟁을 막는 요인은 단통법 자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말기 지원금이 적은 원인은 단통법이 아니라 통신사·제조사가 스스로 경쟁을 회피하는 환경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경쟁 실종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 포화”라고 강조했다. 삼성과 애플이 과점하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통신사도 제조사도 지원금을 구태여 늘릴 이유가 없다는 게 근본 문제란 설명이다. 관계자는 “단통법을 없앤다고 이동통신사 간 경쟁이 촉진되는 것도, 단말기 가격이 극단적으로 하락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장점은 유지하되 단점만 개선하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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