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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제동’ 건 정부, “사실상 사망 선고” vs “추진력 얻기 위한 발판”

재생에너지 2030년까지 '차단', "강제적으로 개점휴업 선고한 셈"
한전 투자 여력 약화에, "계통 연계 시점 계속 늦춰질 것"
정부 조치 이해된다는 의견도, "속도 조절은 선택 아닌 필수"
태안수상태양광발전설비
태안 수상태양광 발전 설비/사진=한국서부발전

정부가 전라·충청·강원 등 지역에서 3㎿ 규모 이상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신규 진입을 2030년까지 차단했다. 전력 계통 포화를 경계하기 위한 조치로, 이로 인해 업계는 앞으로 7년 이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내야 할 판이다. 사실상 재생에너지 생태계가 고사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전문가들 또한 “발전·송변전 계획의 엇박자가 빚은 난국”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놨다.

정부, 재생에너지 발전소 신규 진입 2030년까지 차단

올해 전기위원회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건부 허가를 받은 34건 가운데 26건의 계약에서 ‘계통 시기를 늦출 것’이란 조건이 붙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가운데 12건은 ‘2031년 이후 계통 접속’을 전제로 사업 허가를 받았다. 허가가 지연된 기존 사업을 제외한 신규 사업은 사실상 모두 2031년 이후 계통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진도 맹골도 해상풍력, 신안 슬로시티솔라 발전사업 등 굵직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다수가 최소 7년은 지나고 나서야 생산한 전력을 계통에 접속해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현재 ‘전력 계통 포화’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앞서 한국전력은 전력 계통 상황을 근거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신규 진입이 어렵다는 의견을 전기위원회에 전달한 바 있다.

다만 재생에너지 발전 업계는 사실상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점휴업을 선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전기위원회가 심의하는 사업은 3㎿ 이상 규모지만 이하 사업의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도 비슷한 기조다. 계통 제한 지역은 주로 사업성이 좋은 곳으로 사업지를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는 한전이 지난 5월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발표했지만 사업환경이 오히려 악화했다고 분석했다. 해당 계획은 2022년부터 2036년까지 15년간의 전력 수급 전망과 송·변전 설비 확충 기준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장기 송·변전 계획이 반영된 발전 사업 허가가 9~10월부터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획이 반영되면 계통 지연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근 허가가 모두 2031년 이후 사업 개시를 전제로 나오면서 신규 사업 계획을 수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사업자는 사업 철수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향후 상황도 다소 비관적이다. 한전의 송배전 투자 여력이 약화돼 신규 사업의 계통 연계 시점이 계속 늦춰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2036년까지 15년간 총 56조5,000억원을 송·변전 설비에 투자할 계획인데, 이 가운데 원전 및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의 전력 계통 연계에 쓰이는 재정은 34조5,000억원가량이다. 그러나 한전의 경영 상황이 악화한 데다 설비 건설 관련 주민 수용도가 낮은 만큼 이행에 차질이 예상된다. 발전사업자, 재생에너지 제조업계,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자로 이어지는 생태계 전반에 막대한 타격이 전망되는 이유다. 산업부 측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규 발전 자원의 계통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특정 지역 쏠림을 막기 위한 정책 신호”라고 강조했지만, 업계의 볼멘소리는 높아져만 간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이 묶이면 국내 재생에너지 업계와 기업의 RE100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030년이면 발전 단가 낮아질 것”

다만 일각에선 정부의 조치가 이해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해외에서도 2030년께면 풍력·태양광 발전량이 지금보다 3배가량 늘면서 발전 단가가 절반 수준까지 낮아지리란 분석이 나오는 만큼, 계통 시기를 늦춤으로써 국가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란 주장이다. 실제 지난 7월 에너지 연구기관인 록키마운틴연구소(RMI)는 “세계 전력 생산량에서 풍력·태양광의 비중이 지난해 12%에서 2030년 약 36%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풍력·태양광 발전량 등이 늘면서 에너지 가격도 같은 기간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기준으로 1메가와트시(MWh)당 40달러(약 5만원)인 풍력·태양광 균등화 발전 비용(LCOE)이 2030년에는 20달러(약 2만5,000원)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라자드자산운용(LAM)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과 2015년 균등화 발전 비용은 각각 1MWh당 185달러(약 23만원)와 47달러(약 6만원)를 기록했다. 예측에 따르면 풍력·태양광 발전 비용이 20년 만에 거의 10% 수준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특히 LCOE는 발전설비 건설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합산해 산출되며 발전 기술이 개선될수록 점차 저렴해진다. 재생에너지 상용화 초기에는 운영비 등이 비싸 LCOE가 높게 책정되지만 이후 효율이 높아지며 가격 경쟁력이 상승하는 식이다. 이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선 원전보다 태양광 LCOE가 더 싸게 책정돼 있는 만큼, 에너지 가격 하락이 마냥 허수인 건 아니다.

오영훈-제주도지사가-전력거래소를-방문해-제주의-전력-상황을-점검하고-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전력거래소를 방문해 제주의 전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주도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도 조절’ 필요해”

불안정한 국제 정세도 문제다. 최근 고금리와 전쟁 등이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감축 정책이 차질을 겪고 있다. 비용 증가로 해상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중단되거나 차질을 빚는가 하면 전쟁 및 분단에 따른 광물 무기화로 화석연료 대체 기술 보급이 지연돼 각국의 ‘탈(脫)탄소’ 정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급격한 에너지 전환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각국에서 가시화된 상태다. 예컨대 지난 11월 세계 최대 해상풍력 업체인 덴마크의 오스테드는 미국 북동부 뉴저지주 앞바다에서 진행하던 2건의 에너지 공급 프로젝트에서 전면 철수했다. 이들 프로젝트에서 올 1~9월 예상치를 훨씬 넘어 284억 덴마크 크로네(약 5조3,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동으로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영국의 BP와 노르웨이의 에퀴노르도 복수의 프로젝트에서 각각 5억4,000만 달러(약 7,000억원), 3억 달러(약 4,00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전환 사업에 다소간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국내 지역 간 재생에너지 격차 해소도 과제로 남았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률 전국 1위는 제주(18.3%)다. 겉으로 보기엔 선진적인 에너지 정책이 이뤄지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전력 과잉 생산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가동 중단(출력 제어)’이라는 그림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력 제어가 발생하는 이유는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에서 전력이 초과 생산되고 있음에도 이를 처리할 뾰족한 수가 없는 탓이다. 초과 생산 전력을 보관하는 기술이 현재 상용화되지 못한 데다 초과 공급된 전기를 전력망에 그대로 흘려보내면 전력망에 과부하가 발생하고 심하면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 차원으로 태양광발전 보급 사업을 확대하면서 늘어난 제주 지역 태양광발전 설비로 초과 공급되는 전력량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에너지 생산량 증대에만 관심을 쏟기 보단 부수적인 설비 증설 등에도 재정 투입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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